머지않아 호텔, 차량 등 모든 것이 다 미국화되고 여기저기 스타벅스, 맥도널드가 들어설 텐데 그 전에 쿠바를 봐두고 싶었다.”

 ‘쿠바가 변하기 전에 와보고 싶었다’는 얘기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 각지에서 쿠바를 찾은 관광객 열이면 열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쿠바가 변화의 기로에 들어선 것은 맞지만 금방 미국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많은 쿠바인들에게 ‘김칫국’으로 여겨진다. 변화를 바라는 쪽에서 보기에 체제의 경직성, 관료주의, 미국의 금수조치 때문에 변화에 속도가 날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이 있다면, 변화에 저항하는 쪽에서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완전고용 등 좋은 점까지 희생해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다만 쿠바의 시장화 흐름 자체가 뒤집어지기 어렵다는 데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반면 시중의 달러를 거둬들이기 위해 도입한 이중환율제는 쿠바 정부에 고민을 더해주고 있다. 쿠바는 1993년 쿠바페소(CUP)라는 기존 화폐에 달러와 1 대 1로 교환되는 태환페소(CUC)를 도입했다. 국내 경제 활동의 대부분은 CUP로 이뤄지고, CUC는 외환을 가진 외국인 관광객들이 쓰는 돈이다. 두 화폐의 분리는 대체로 잘 이뤄진 편이지만 부를 가진 일부 쿠바인들 가운데 CUC 통용 상점의 고급 수입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점차 혼용됐다. 가격 왜곡이 일어나고 회계장부의 불투명성이 높아져 쿠바에 투자하려는 해외기업들에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어느 화폐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통계도 큰 차이가 난다.

쿠바 정부가 중국의 경제특구를 본떠 만든 마리엘 경제특구에 해외투자가 지지부진한 데는 고용 조건이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점도 있지만 이중환율에서 비롯되는 불투명성도 한몫한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2013년 10월 화폐통합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2년이 다 된 지금도 통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돈 있는 쿠바인들이 달러와 바꿀 수 있는 CUC를 더 보유하려 들면서 CUC와 CUP의 가치는 1 대 24까지 벌어졌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화폐통합 이후 자국화폐가 달러화로 대체되지 않으려면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이 충분해야 하지만 생산재, 공산품,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쿠바가 섣불리 화폐통합을 시도하다가는 미국 경제권에 편입될 우려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쿠바 정부가 화폐통합 방침을 발표해놓고 섣불리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다.

관광객들의 예상과 달리 맥도널드, 스타벅스의 쿠바 상륙이 이른 시기에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쿠바인들의 미국화에 대한 저항감뿐 아니라 이미 경제생활에 뿌리내린 이중환율 같은 제도에서도 기인한다.

쿠바에는 사회주의의 핵심인 배급제가 여전히 살아 있다. 지금도 많은 쿠바인들은 매달 쌀, 콩, 설탕, 소금, 커피, 비누, 식용유, 분유 등 생필품을 ‘보데가’라는 배급소에서 받아 쓴다. 관타나모의 한 배급소에서 만난 여성은 식용유, 쌀 등 배급을 받아가며 “보름이면 떨어질 양이지만 이게 없으면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배급제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노인이나 유아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는 점에서 완전히 폐지하기는 어렵다고 쿠바 내 유일한 한국계 영주권자인 정호현 한·쿠바 교류협회 실장이 말했다. 아울러 쿠바가 자랑스러워하는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 이후에도 없어지기 어려운 제도다. 오마르 에베르리니 아바나대 경제학과 교수는 “첨단 의료 서비스를 받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에 민간영역이 진출할 수는 있겠지만 전 국민 무상의료 제도의 변화는 최소 향후 5년간은 전혀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는 2011년 택시와 민박, 식당 등 자영업 확대를 위해 중고차 매매와 주택 소유 등을 허용했다. 쿠바 경제에서 민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현재 25%)은 앞으로 계속 커질 전망이다. 최근에는 공공장소에서 인터넷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설치했다. 인터넷 이용과 반체제 인사들의 의사 표현의 자유 확대는 같이 가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의 수교로 쿠바 사회 변화의 확실한 모멘텀이 마련됐지만 쿠바 정부는 변화의 속도와 폭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중대 고비는 내년 4월 쿠바 공산당 7차 당대회다. 5년 만에 열리는 이 당대회는 2018년 은퇴하겠다고 밝힌 라울 카스트로가 주재하는 마지막 회의여서 쿠바의 변화가 어디까지 갈지 가늠해볼 기회이다.

경향신문 아바나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